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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오늘]죽음을 기억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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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인 25-06-21 09:48 0회 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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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면서 지난 일들이 앞날을 대신해 거칠게 들어선다. 과거가 떠오르는 것을 어쩌지 못한다. 특히나 죽은 이들이 지속해서 출몰한다. 그 존재를 결코 망각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죽음은 인간의 삶에서 가장 충격적이고 극적인 사건이다. 죽음에 대한 경험은 작가들의 삶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그것은 미술 속에서도 여러 가지 모습으로 반영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국 현대미술은 아직 이 부분에 취약한 형편이다. 대부분 미술을 죽음과는 무관한 것으로 여긴다. 개별적으로는 삶과 죽음에 대해 매일 생각할 것이고 더불어 주변에서 일어나는 여러 죽음과 맞닥뜨리면서도 정작 그 문제에 대해 우리 작가들은 오랫동안 침묵을 유지해왔다. 오늘날은 오로지 삶에만, 살아 있는 몸에만 관심을 두고 있다. 죽음과 영혼에는 별 관심이 없다. 지금 우리에게 죽음은 시간적으로든 공간적으로든 철저하게 타자화돼 있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삶 속에서 부단히 직접적으로 죽음과 마주치는 훈련이다. 미술 속에서 재현된 죽음을 접하는 일은 그런 의미 있는 훈련이 되어준다. 우리는 늘 지속적으로 죽음이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것은 삶이 무엇인지를 규명하는 일이자 의미 있는 삶의 추구일 것이다.
지금 광양에 있는 전남도립미술관에서는 ‘여수순천십일구사건(여순사건)’을 다룬 강종열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 작가는 어린 시절 그 현장에서 살아남아 잔인한 학살에 대한 기억을 구전하던 어머니의 음성을 여전히 생생히 기억한다. 그 기억의 힘으로 그린 이 그림들은 망자의 한을 풀어주기 위한 의식과도 같이 진행된다. 역사는 이렇게 기억의 힘 덕분에 망실되지 않는다.
죽음의 현장을 보여주는 음화와도 같은 그의 그림들은 내내 사방을 검게 물들이면서 사람의 감정을 오래도록 침전시키는 그 무엇으로 배회한다. 특히 80여점의 목탄화는 어머니에 의해 구전된 이야기나 일부 사진 자료에 기반해 그린 것들이다. 아마도 그는 이 작업을 하면서 1948년 10월 그 현장의 잔혹하고 혐오스러운 장면을 홀로 목격하고 돌아온 사람처럼 몰입한 듯하다. 망자와 그 망자를 바라보며 통곡하던 이들에게 빙의돼 그린 것처럼 느껴지는데, 그래서인지 작가는 상당히 힘겹게 작업을 이어나갔다고 내게 말한다. 이 그림이 단지 그 역사적 상흔을 기록하고 묘사하는 데서 벗어나 무의미하게 죽어간, 황망하게 학살된 넋들에 대한 초혼 의식에 더 방점이 놓여 있기에 그런 것 같다.
당시 지역주민 약 1만명이 한국 군대와 경찰에 의해 살해당했다. 끔찍한 여순사건이 지난 후 적어도 대한민국에서 생존하기 위해선 먼저 ‘반공 국민’이 되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빨갱이로 몰려 학살된다. 빨갱이여서가 아니라 빨갱이라고 낙인이 찍히면 빨갱이가 되는 것이다. 여기서 여순사건의 중요성이 자리한다. 여전히 우리 역사는 여순사건이 남긴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하고 중음신(中陰神)이 되어 유랑한다.
강종열의 그림이 이 모든 여순사건의 내용과 실상을 죄다 담아낼 수는 없다. 그러나 그림은 문자나 사진보다도, 그토록 어처구니없는 비극과 참담함을 정서적으로 환기하거나 상상하게 하는 데 있어 강력한 주술적인 힘을 지닌다. 작가는 자신의 그림이 단지 여순사건의 비극을 기록·재현·환기하는 데 그치지 않고, 궁극적인 화해와 더불어 터무니없이 억울하게 죽어간 모든 양민의 혼을 위무해주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한 작가에 의해 당시의 죽음이 사라지지 않고 기억되고 기록돼 우리에게 왔다.
한국 현대미술은 아직 이 부분에 취약한 형편이다. 대부분 미술을 죽음과는 무관한 것으로 여긴다. 개별적으로는 삶과 죽음에 대해 매일 생각할 것이고 더불어 주변에서 일어나는 여러 죽음과 맞닥뜨리면서도 정작 그 문제에 대해 우리 작가들은 오랫동안 침묵을 유지해왔다. 오늘날은 오로지 삶에만, 살아 있는 몸에만 관심을 두고 있다. 죽음과 영혼에는 별 관심이 없다. 지금 우리에게 죽음은 시간적으로든 공간적으로든 철저하게 타자화돼 있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삶 속에서 부단히 직접적으로 죽음과 마주치는 훈련이다. 미술 속에서 재현된 죽음을 접하는 일은 그런 의미 있는 훈련이 되어준다. 우리는 늘 지속적으로 죽음이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것은 삶이 무엇인지를 규명하는 일이자 의미 있는 삶의 추구일 것이다.
지금 광양에 있는 전남도립미술관에서는 ‘여수순천십일구사건(여순사건)’을 다룬 강종열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 작가는 어린 시절 그 현장에서 살아남아 잔인한 학살에 대한 기억을 구전하던 어머니의 음성을 여전히 생생히 기억한다. 그 기억의 힘으로 그린 이 그림들은 망자의 한을 풀어주기 위한 의식과도 같이 진행된다. 역사는 이렇게 기억의 힘 덕분에 망실되지 않는다.
죽음의 현장을 보여주는 음화와도 같은 그의 그림들은 내내 사방을 검게 물들이면서 사람의 감정을 오래도록 침전시키는 그 무엇으로 배회한다. 특히 80여점의 목탄화는 어머니에 의해 구전된 이야기나 일부 사진 자료에 기반해 그린 것들이다. 아마도 그는 이 작업을 하면서 1948년 10월 그 현장의 잔혹하고 혐오스러운 장면을 홀로 목격하고 돌아온 사람처럼 몰입한 듯하다. 망자와 그 망자를 바라보며 통곡하던 이들에게 빙의돼 그린 것처럼 느껴지는데, 그래서인지 작가는 상당히 힘겹게 작업을 이어나갔다고 내게 말한다. 이 그림이 단지 그 역사적 상흔을 기록하고 묘사하는 데서 벗어나 무의미하게 죽어간, 황망하게 학살된 넋들에 대한 초혼 의식에 더 방점이 놓여 있기에 그런 것 같다.
당시 지역주민 약 1만명이 한국 군대와 경찰에 의해 살해당했다. 끔찍한 여순사건이 지난 후 적어도 대한민국에서 생존하기 위해선 먼저 ‘반공 국민’이 되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빨갱이로 몰려 학살된다. 빨갱이여서가 아니라 빨갱이라고 낙인이 찍히면 빨갱이가 되는 것이다. 여기서 여순사건의 중요성이 자리한다. 여전히 우리 역사는 여순사건이 남긴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하고 중음신(中陰神)이 되어 유랑한다.
강종열의 그림이 이 모든 여순사건의 내용과 실상을 죄다 담아낼 수는 없다. 그러나 그림은 문자나 사진보다도, 그토록 어처구니없는 비극과 참담함을 정서적으로 환기하거나 상상하게 하는 데 있어 강력한 주술적인 힘을 지닌다. 작가는 자신의 그림이 단지 여순사건의 비극을 기록·재현·환기하는 데 그치지 않고, 궁극적인 화해와 더불어 터무니없이 억울하게 죽어간 모든 양민의 혼을 위무해주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한 작가에 의해 당시의 죽음이 사라지지 않고 기억되고 기록돼 우리에게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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