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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리더인가, 대리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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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인 25-06-02 02:11 0회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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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한다. 이번 대선을 앞두고 이 명제가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우리의 선택이 잘못되면 꽃은 져버릴 수 있다.
현대 민주주의는 대의 민주주의로 작동하며, 대의 민주주의에서 정치인은 주권자인 국민의 대리인이다. 선거는 대리인을 뽑는 것이지, 리더나 지도자를 뽑는 것이 아니다. 물론 국민의 민주 의식이 발전하지 못한 경우에는 국가와 사회를 현명하게 이끌어갈 리더나 지도자가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압축적으로 발전했고 국민의 참여 의식도 대단히 성숙했다. 4·19혁명 이래 국민적 저항을 통해 세 차례나 부패 권력을 몰아낸 경험이 이를 증명한다.
젊은 정치인 이준석 후보에게 기대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하지만 TV토론과 유세에서 그가 보여준 행동은 구세대 정치인의 행태와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3차 TV토론에서 논란이 된 성폭력적 발언은 그의 성인지 감수성 수준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거듭 사과했고, 그 과정에서 많이 배웠을 것이다.
그러나 대의 민주주의 인식에서 이 후보는 아직 많이 부족하다. 사과를 마무리하면서 그는 “더 신중한 리더로 거듭나겠다”고 했다. 자신을 주권자 국민의 대리인으로 인식하지 않고 국민을 이끌어가는 지도자로 생각하는 듯하다. 대국민 사과라는 맥락으로 볼 때 ‘리더’의 대상은 국민이며, 국가 차원에서 리더는 대개 ‘지도자’의 의미로 쓰이기 때문이다.
‘리더’는 “조직, 단체 따위에서 전체를 이끌어가는 위치의 사람”이며, ‘지도자’는 “남을 가르쳐 이끄는 사람”이다. 당대표는 당의 리더이지만 국민의 리더는 아니며, 국민의 지도자는 더 아니다. 최고 통치자로 뽑히면 국민의 대리인이 될 뿐이다. 국가 차원에서 ‘민주적 리더십’이나 ‘민주적 지도자상’이라는 말은 형용모순이다. 민주주의 절차는 ‘가르쳐 이끌어가는 것’이 아니라, 개인과 집단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국민을 우매한 무리로 폄하하고 자신이 그들을 이끌어나갈 지도자로 생각하는 극단적인 사례의 하나가 윤석열 전 대통령이다. 검찰총장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법과 제도로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자 무력으로 국민을 ‘계몽’하려 했다. 대통령은 리더라 할지라도 정해진 기간과 양도된 권한을 통해 국민을 대신하는 집단의 리더일 뿐이다.
이재명 후보는 대통령을 “머슴 중의 상머슴”이라고 했다. ‘상머슴’은 “일 잘하는 장정 머슴”을 지칭하므로 그의 표현이 사전적으로 올바른 인용은 아니지만, ‘머슴 중의 가장 높은 사람’이라는 인식은 분명하다. 근대 이후 공무원을 국민의 ‘공복(公僕)’이라고 불렀다. 공적인 ‘종’이나 ‘머슴’이라는 말이며, 현대 사회에서 ‘종’이나 ‘머슴’은 ‘대리인’으로 이해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공복을 지도자나 리더로 착각하기 시작했다. 이재명 후보는 ‘공복’의 판단 기준을 ‘살아온 삶’이라고 했다. 김문수 후보는 경기도지사 시절 소방서에 전화해 도지사의 권위를 내세웠고 코로나19가 창궐하던 시절에는 국회의원 이력을 언급하며 위세를 부리기도 했다. 공복의 인식을 가지고 있는 정치인이나 공무원이 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니다. 게다가 윤석열 내란을 옹호한 것에서 그 한계가 이미 충분히 드러났다.
공복의 인식이 가장 투철한 이는 권영국 후보다. 노동자와 약자를 변호하며 그들과 함께 살아온 것이 그의 삶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우리가 더 두려운 선택을 앞두고 있다는 점이다. 보수 결집이 불법계엄의 망령을 되살릴 수 있어서다. 계엄의 유령은 지금도 투표함 주위를 배회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는 비약적으로 발전했으며 민주시민 의식도 놀랄 정도로 고양됐다. 하지만 급격한 발전에는 도태되는 사람도 있게 마련이다. 빈곤 콤플렉스와 신민(臣民) 의식을 벗어나지 못해 강압적으로라도 자신을 이끌어줄 지도자를 원하는 국민이 적지 않다. 급속한 발전이 안정기에 도달하기 위해 겪어야 할 과도기라 하겠다.
과도기는 현명하게 넘어가면 밝은 미래로 연결되지만 혼란에 휩싸여 헤쳐나가지 못하면 과거로 회귀하거나 더 열악한 상황으로 이어진다. 21대 대선은 과도기에 치러지는 중대한 갈림길이다. 손바닥에 ‘왕(王)’ 자를 새겨 총칼로라도 국민을 ‘계몽’하려던 세력을 복귀시킬 것인가 아니면 민주시민으로서 능력 있는 대리인을 선택할 것인가. 우리들의 선택이다. 21대 대선은 대통령을 뽑는 것만이 아니다. 스스로 ‘어리석은 국민’임을 인정할 것인가 아니면 민주시민으로서 주권자의 정체성을 지킬 것인가의 선택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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